아는 언니가 지난달에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형부랑 갔었어?'
'미쳤냐?'
'그럼 누구랑? 친구들?
'어'
'어떤 친구들이랑? 재밌었겠다'
'재덕이 중1 때 모임 엄마들이랑'
'우와 대박이네. 애들 학교 때 엄마들이랑 아직도 친하게 지내?'
'어. 그 모임은 끈끈히 오래 가는 편이야'
'그러기 힘든데 언니 대단하다. 재덕이 중1 때 모임이면 벌써 10년이 넘었잖아. 다들 잘 맞나 보네'
'어 뭐 그렇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그 모임 애들이 다 진상들이어서 아들놈들 서로 욕하다 위로하다 이제까지 온 거지 뭐. 이제는 욕할 힘도 없어서 그냥 같이 남는 시간에 여행이나 다니는 거야'
'아~ 하~'(깊은 깨달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내 사교영역의 지평은 갑자기 드넓게 열리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반모임이라는 것도 열리고, 주말마다 열리는 생일파티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알음알음,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교문 앞에서 옹기종기 서 있다가 얼굴을 익혀 알음알음
이야~~ 인간관계가 갑자기 이렇게 풍요로워질 수가 없다.
내 카톡 친구 목록에는 아직도 그때의 영광스러운 사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OO맘, XX엄마 등등..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나의 한때 지인들.
카톡프로필 대문사진에 본인 얼굴 대신 푸른 하늘이나 알록달록 이쁜 꽃사진만 올려놓고 있으면 당최 어떻게 생겼었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다.
이참에 카톡친구목록 관리 좀 해야겠구나.
그 많던 나의 언니, 동생, 친구들이 어떻게 나의 인생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던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라이딩의 주제가 주로 예체능 액티비티였던 시절의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자주 어울렸었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그룹을 짜서 같이 액티비티도 하고.
분주했던 아이들만큼이나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나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의 예체능 액티비티가 조금씩 마무리되고 이제 라이딩의 주제가 학원이 되면서 우리는 각개전투 대형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고 하지 마라 네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내가 기어이 알아낼 것이니...
우연히 학원 앞에서 대기하다가 아는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 날이면,
'어머 언니! 오랜만이야. 은성이도 여기 다니는구나. 몰랐네'
'어~ 찬빈엄마야. 찬빈이도 여기 다녀? 요즘 여기가 핫하긴 하네. 여기 오면 다 만난다니까. 나 저번에는 성관이랑 범호엄마도 만났잖아. 난 걔네들 멀리 이사 간 줄 알았어. 하두 안 보여서. 그나저나 찬빈이는 무슨 반이야?'
'찬빈이는 Level 1A반이야. 어휴 말도 마. 겨우 올라갔다. 은성이는?'
'은성이는 뭐 그냥 그래. 나 사실 학원 바꿀까 고민 중이었거든. 여기가 소문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그나저나 반가웠어 또봐~~'
.
.
"엄마, 나 이 학원 끊어?"
"시끄러워!"
아이의 입학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나의 인간관계는 아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딱히 내가 그들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들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처럼 나도 인간관계에 흥미를 잃어간 것뿐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새로 만나게 되는 친구 엄마들에게 초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살갑게 다가서지지 않게 된다. 그 사이 나도 나이가 더 먹어서 일 것이고, 또한 살갑게 사귀었던 그들도 결국엔 대면대면해지게 된다는 경험을 숱하게 해서일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성적으로 줄이 세워지게 된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들고 오는 성적표를 자신의 인생 성적표인 것 마냥 애달파하고 아이의 등수가 자신이 받은 등수인양 자랑스럽거나 부끄러워한다.
학교에서 일어난 불합리한 일에 쓴소리 한마디를 하고 싶어도 내 아이 성적을 생각하면 그 소리가 목구멍으로 다시 꿀꺽 삼켜진다.
왜 굳이? 그게 성적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런데 또 그게 굳이 그렇게 되더라. 젠장.
게다가 시절은 바야흐로 중2병의 계절이 도래하니...
사실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는 이미 초등학교 때 시작되므로 중2가 되었다고 해서 딱히 호르몬의 이상변이가 생길 일은 없다. 아이들은 중2가 되어 중2병이 생기는 게 아니다. 그저 지랄거릴 수 있는 공식적인 구실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뿐이다.
'내버려 둬 중 2잖아.'
'참어. 중2병이니까'
엄마들은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부끄러워진다. 내 아이의 지랄거림이.
그 지랄거림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지랄거림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엄마들의 사고엔 크나큰 오류가 하나 존재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우리 집에만 저런 웬수가 있고 남의 집 애들은 다 멀쩡한 것 같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더더욱 쪼그라들어간다.
이쯤 해서 카톡 친구목록 편집을 한 번쯤 해줬어야 했다. 그것도 과감하게..
고등학교에 아이가 들어가면 엄마들은 그동안 꺼져있던 파이팅의 불씨가 다시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는 것. 그거 다~ 필요 없어. 지금부터가 진짜지. 제대로 된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이제부터 한번 제대로 불살라보는 거야!!!!!!! '
하지만 엄마의 투지와는 다르게 아이는 금세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주고 우리는 이내 다시 겸손해진다. 많이 겸손해진다.
효도하는 거다. 엄마 헛 힘쓸까 봐 바로 배려해 주는.
1. 잠을 자더라도 학원 책상 위에 엎드려 자야 맘이 편하다는 A군.
2. 학원 안 가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B군.
발렌스게임을 한 번 해보자 누가 더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이가 고등학생쯤 되면 아이는 대개 새로운 친구무리를 형성하게 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와는 달리 우리는 그들의 엄마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와 그들의 엄마는 친구가 될 가능성이 제로가 된다.
초등학교 때 자주 어울렸던 아이의 친구들은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거의 생사 정도만 아는 사이가 되어 있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직도 그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아이들의 동향을 살피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진화하지만 엄마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맘이 맞는 아이의 친구 엄마와 친구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난 지방에서 모든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면서 서울살이를 하게 되었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낯선 도시에서 제대로 친구를 사귈 기회조차 없이 한동안을 육아와 가사에 치이며 살아갔다.
첫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많은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을 때 난 잠시나마 행복했었던 것도 같다.
그 인연을 지금까지 제대로 이어오지 못한 이유가 과연
1. 나의 편협함 때문일까
2. 나의 소심함 때문일까
3. 나의 질투심 때문일까
아니면,
4. 내가 본래 지랄 맞아서일까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